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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성화가 인류 위기에 ‘하느님의 뜻’ 성찰하는 매개체 됐으면 해요”

글쓴이 등록일 21-03-19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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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짬] 가톨릭 성화 작가 정미연 화가경주 남산 서쪽 기슭인 배동의 삼릉 근처에 있는 자택의 정원을 배경으로 선 정미연 화백. 남편 한국화가 박대성 화백이 모은 신라 시대 유물과 정 화백이 조각한 십자가의 길 14처·성모상 등으로 꾸며 그대로 전시장이다. 국제신문 제공“전시 제목 ‘현존’이 좀 어렵지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일반인에겐 더더욱 그럴 거예요. 쉽게 말하면, 코로나 대유행 사태로 인류 전체가 전례 없는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느님의 뜻을 성찰해보자는 뜻이에요.”오는 24일부터 4월5일까지 서울 명동성당 갤러리1898에서 개인전 ‘현존’을 여는 가톨릭 성화 작가 정미연(아기예수의 데레사·67) 화백은 “어떠한 고난의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우리와 늘 함께 ‘현존’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다”고 설명했다.20년 가까이 가톨릭 성화 작업을 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는 6년째 매주 한점씩 그려온 성당 주보 표지화 200여점과 근작인 7점의 ‘천지창조’ 콩테화, 브론즈로 만든 ‘십자가의 길-14처’도 선보인다. 또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대변인)의 글을 함께 엮은 책 <그림으로 보는 복음 묵상>(기쁜소식 펴냄)도 새로 출간했다.서울 평창동 시대를 마감하고 10여년 전부터 경북 경주에 정착해 작업 중인 정 화백을 18일 전화로 만났다.서울 명동성당 갤러리 ‘현존’ 개인전 6년째 성당 주보 표지화 200여점 인간 희로애락 7점 연작 ‘천지창조’ 브론즈 조각 ‘십자가의 길-14처’ ‘그림으로 보는 복음 묵상’도 출간“20여년 성화 작업 총정리 자리로”정미연 화가의 ‘천지창조’ 연작 중 일부. 명동성당 갤러리1898 제공대구에서 태어나 간장 제조업을 하던 부유한 집안에서 8남매(4남4녀)의 막내로 자란 그는 1975년 가톨릭재단인 대구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이런 이력에 비춰보면 그가 가톨릭 성화 전문 작가가 된 건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숱한 반전이 있었다.“미대를 다닌 언니의 영향으로, 법대나 의대를 원하던 아버지의 바람을 어기고 화가의 길을 선택했어요. 하지만 애초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고, 여고 때처럼 흰블라우스에 검정치마 교복을 입고 매일 기도로 시작하는 대학 생활이 답답해 놀러 나갈 궁리만 하던 ‘망나니 선머슴’이었죠.”정작 그를 가톨릭으로 이끈 것은 남편인 한국화가 소산 박대성 화백이었다. “대학 2학년 스무살 때 대구에 온 오태석 작가의 연극 <초분>을 보러 갔다가 옆자리에 앉은 인연으로 소산 선생을 만나 1978년 결혼했어요. 남편은 그때 화단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어릴 적 비극적 가족사로 한쪽 팔이 없을뿐더러 10살이나 많은 가난한 화가였으니, 오빠들을 비롯해 집안의 반대가 엄청났지만 끝내 관철시켰죠. 아무튼 남편의 뜻에 따라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면서 영세를 받게 됐어요.”그런데 전공대로 인체 드로잉(누드 크로키)을 비롯한 서양화 작업을 주로 하던 그가 가톨릭 신앙에 본격적으로 귀의해 성화를 그리게 된 것은 어머니(황 루시아)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는 애초 불자셨는데 셋째 오빠가 42살 이른 나이에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성당의 공원묘지에 잠들게 되자 기꺼이 가톨릭으로 개종하셨어요. 그때 다른 형제들까지 집안이 모두 가톨릭으로 귀의했죠. 어머니는 관절염으로 30년 동안 걷지 못하셨는데 대신 묵주와 묵주기도 책을 품고 사셨죠. 2004년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유품인 묵주기도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득 우리 정서에 맞는 성화를 그려 넣으면 더 보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경주의 자택에 각각 작업장을 두고 있는 서양화가 정미연 화백이 남편인 한국화가 박대성 화백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10살 나이차와 반대를 무릅쓰고 맺어진 부부는 가톨릭 성화와 불교 소재 작품으로 서로 화풍은 다르지만 43년째 선의의 경쟁 속에 예술적 교감을 나누고 있다. 경주신문 제공앞서 1995년 서울 세검정성당에서 기공 기념 개인전을 열었던 그는 2004년 유경촌 신부가 글을 쓴 묵상집 <내가 발을 씻어준다는 것은>(바오로딸 펴냄)의 성화를 맡아 가톨릭계에 이름을 알렸다. 성화를 한국인 정서에 맞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책은 무려 100만부 넘게 팔려 교회사에 남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 여세로 그는 어머니의 묵상기도집을 새로 그리는 작업에 돌입했다.“그 무렵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를 느낄 정도로 크게 앓았어요. 그래서 어머니의 낡은 기도책을 다시 꺼내 봤는데 날마다 ‘막내사위를 위한 기도’ 식으로 빼곡히 메모를 해두셨더라고요. 어머니의 사랑을 새삼 깨닫고 건강을 회복하자 곧바로 작업에 매달렸죠. 특히 우리 천주교 역사가 200년이 넘도록 중세 서양화가 엘 그레코 등의 성화를 보고 있다는 게 아쉬웠어요. 아프리카에도 흑인 예수님과 성모님이 계시잖아요?”그는 2009년 신달자 시인과 함께 <성모님의 뜻에 나를 바치는 묵주의 9일기도>(성바오로 펴냄)를 펴낼 수 있었다. 구아슈(수채물감의 일종)로 그려낸 그의 성화는 한복 차림의 예수, 경주 석굴암이나 에밀레종 배경 등 한국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반영해 큰 호평을 받았다. 또 출간 준비를 하면서 한국 그리스정교회의 초대 교구장을 지낸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에게 감수를 요청한 인연은 그를 지금의 주보 전문 작가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그리스정교회에서는 음악과 그림 등 예술작업을 성물로 삼아 중시했어요. 그래서 그림을 보여드렸는데 ‘당신이 한국성화의 밀알이 되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했죠.”그런 계기로 그는 소티리오스 트람바스 대주교와 함께 터키와 그리스 22개 도시의 수도원과 성당 순례를 동행하면서 <평화신문>에 글과 그림을 연재했다. 이어 2011년 <그리스 수도원 화첩기행>(성바오로 펴냄)로 묶어 펴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성찰하고 비우는 체험을 했어요. 비로소 하느님 앞에 오롯이 선 느낌이랄까.”2015년 서울대교구 주보 표지화를 시작으로 그는 대구, 원주, 전주, 제주 등 전국 대교구의 주보를 지금껏 그리고 있다. “매주 한점씩 그리다 보니 일상의 모든 순간이 기도의 나날이죠.”이번 전시의 주제 작품인 <현존>은 500호 크기의 대작이다. 인간군상의 희로애락을 표현한 이 작품에는 정 화백의 20여년 성화 작업이 모두 깃들어 있다고 했다. “우리의 모든 일상을 모든 것을 알고 지켜보시는 하느님 앞에 우리는 그저 먼지보다 작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께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진솔하게 드러내 고난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esc 기사 보기▶4.7 보궐선거 기사 보기[ⓒ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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